자유에 관하여
만약 우리에게 의견을 표현할 자유와 더불어 토론할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직 명령과 복종만 있을 뿐이다. 명령과 복종은 우리가 오류를 수정할 가능성과 그로부터 더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마저 차단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자유는 필요하다. 개별성 역시 자유의 발현이다. 개별성은 다양성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개별성 발휘를 위한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 우리는 획일성 또는 동일성이라는 비인간화를 지향하게 된다. 이러한 비인간화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별성을 표현하기 위한 자유가 필요하다.
밀의 『자유에 관하여』는 우리 자신은 물론, 타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방법을 서술한다. 또한 우리 자신의 행동과 타인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더 나아가 사회적 상호 작용을 도모할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같은 상호 작용이 사회에 어떻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지, 나아가 이를 위해 왜 우리가 소수의 의견을 특히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역설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밀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
1장. 서문 13
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 37
3장. 행복의 한 요소로서 개별성 109
4장.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권위의 한계에 대하여 143
5장. 적용 176
옮긴이 해제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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