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1798년, 콜리지와 함께 ≪서정담시집≫을 발간해 영국 낭만주의 시대를 연 워즈워스의 시를 엮은 것이다. 정형화된 시어법, 세련된 수식을 버리고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언어를 골라” 개인의 주관적 내면을 주시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자연이 처음으로 생명을 지닌 자립적 존재로 기능하게 되었다.
저자소개
저자 : 윌리엄 워즈워스
저자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1770년 4월 7일 영국 컴벌런드 호수 지방의 북서부 끝자락에 자리한 코커머스라는 유서 깊은 소도시에서 5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워즈워스는 펜리스에서 초등학교(여기서 그는 뒷날 아내가 될 메리 허친슨과 함께 공부했다)를 마친 후 코커머스 그래머스쿨에 입학했지만 채 여덟 살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열세 살 때인 1783년, 그의 아버지 또한 세상을 떠났다. 조실부모의 경험과 아끼던 누이동생 도로시와 이별한 경험으로 인해 그는 뒷날 자신의 시에서 빈번히 가족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1787년에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세인트존스칼리지에 입학했지만, 정규 교과과정보다는 선배 시인들의 시를 읽고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일에 더 열중했다. 1790년에 그와 벗 로버트 존스는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까지 여행했는데,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 여행 경험은 ≪서곡≫ 6권에서 상세히 서술된다. 대학 졸업 후 두 사람은 북웨일스를 거쳐 멋진 경관으로 널리 알려진 와이 강 계곡까지 걸어서 여행했다. 1791년 11월 워즈워스는 혁명의 열기에 휩싸여 있던 프랑스로 건너갔다. 혁명 지지자였지만 왕당파 지지자들과도 어울렸고, 아네트 발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1792년 10월 말 프랑스를 떠나 12월 말에 영국에 도착했고, 그사이(12월 15일)에 두 사람의 딸 캐롤라인이 태어났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선언한 상황에서 워즈워스는 발롱과 결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했지만, 이후에도 그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795년 혹스헤드 그래머스쿨 시절의 벗의 동생인 레이슬리 칼버트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유산으로 남겨 준 900파운드 덕분에 그의 경제적 여건은 훨씬 나아졌다. 워즈워스와 도로시는 도싯 주 레이스다운으로 이주했고, 그는 이미 1793년에 알프스 산맥 도보 여행이 배경이 된 ≪저녁 산책≫과 ≪소묘≫를 발간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아 가던 중이었다. 그는 이 시집들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2∼1834)와 로버트 사우디(1774∼1843) 같은 시인들과 유니테리언파 신자인 출판업자 조지프 코틀을 브리스톨에서 만났다. 1797년 6월 자신들의 집을 방문해 몇 주간 머문 콜리지에게 호감을 느낀 워즈워스 남매는 당시 콜리지가 살던 네더스토이에 가까운 서머싯의 알폭스덴하우스로 이주했고, 두 시인은 ≪서정담시집≫을 합작해 발간할 계획을 세웠다. 1798년 워즈워스는 도로시와 함께 와이 계곡을 다시 찾았는데, 이때의 경험은 널리 알려진 <틴턴 수도원…>으로 결실을 맺었다. 워즈워스가 브리스톨로 돌아온 직후 쓴 이 시가 포함된 ≪서정담시집≫은 1798년 9월 코틀의 도움으로 익명으로 발간되었고, 두 시인의 ‘창조적 공생’의 성공적인 결실인 이 시집은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서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정담시집≫이 발간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워즈워스 남매는 콜리지와 함께 배를 타고 독일로 갔고, 워즈워스 남매는 작센 주의 고즐라에, 콜리지는 괴팅겐에 머물렀다. 도로시와 함께 혹독한 겨울을 고즐라에서 보내는 동안 워즈워스는 이른바 ‘루시 시편들’과 대표작이 될 ≪서곡≫ 1∼2부를 썼다. 이듬해 봄에 귀국한 워즈워스 남매는 1799년 12월 그라스미어의 더브코티지로 이주했는데, 이 집이 그가 호수 지방에서 거주하게 될 세 집 중 첫 집이었다. 이곳에서 지낸 8년은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생산적인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그는 ≪서정담시집≫ 2권을 추가했고, 이 시집은 여러 번 판을 거듭했다. 또 1805년에는 13권으로 구성된 자전적 장시인 ≪서곡≫을 완성했고, 또 다른 장시인 ≪소요≫를 쓰기 시작했으며, 1807년에는 ≪합본 시집≫을 발간했다. 1802년에 메리 허친슨과 결혼한 워즈워스는 1803년부터 1806년 사이에 세 자녀를 낳았다. 도로시의 생생하고 매혹적인 일기들은 이 행복했던 더브코티지 시절을 다루고 있다. 1808년부터 1811년까지 3년간 워즈워스 일가는 앨런뱅크에 거주했고, 이곳에서 자녀 두 명이 더 태어났다. 1813년에 워즈워스 일가는 앰블사이드와 그라스미어 사이의 라이덜마운트로 이주했고, 워즈워스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 거주했다.
1814년에 워즈워스는 장시 ≪소요≫를 발간했고, 첫 두 시집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 다른 시집들도 뒤따랐다. 1820년대부터 그의 명성은 점차 높아졌고, 성공의 보상들이 잇따랐다. 그는 1838년에는 더럼대학교로부터, 1839년에는 옥스퍼드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옥스퍼드대학교 학위 수여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843년에 사우디의 뒤를 이어 영국의 계관시인으
목차
가엾은 수전의 몽상 3
동물적 평온함과 쇠잔함 5
누이에게 7
초봄에 지은 시 11
우린 일곱이에요 14
사이먼 리 19
충고와 대답 26
돌려놓은 탁자 29
틴턴 수도원에서 수마일 떨어진 상류 지점에서 지은 시?1798년 7월 13일, 여행 중에 와이 강둑을 다시 찾았을 때 32
개암 따기 42
문득 북받치는 슬픔을 나는 느꼈네 46
그녀는 인적 없는 곳에 거주했네 49
3년을 그녀는 햇살과 소나기 속에서 자랐네 51
선잠이 내 정신을 봉해 버렸네 54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나는 돌아다녔네 55
루시 그레이 57
4월의 두 아침 62
뻐꾸기에게 66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네 69
1801년(‘나는 보나파르트를 애통해했다’) 70
결의와 자립 72
웨스트민스터 교(橋)에서, 1802년 9월 3일 84
고요하고 상쾌한 아름다운 저녁이어라 86
런던에서, 1802년 9월 88
런던, 1802년 90
베네치아공화국의 멸망에 부쳐 92
수녀들은 수녀원의 비좁은 방에 불만이 없고 94
우리는 너무 속세에 물들어 버렸네 96
의무에 부치는 송가 98
송가?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얻은 불멸성의 암시 103
한 조각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다가 117
그녀는 기쁨의 화신 119
서쪽으로 걸어가다가 122
홀로 추수하는 처녀 125
비가(悲歌) 128
갑작스러운 기쁨에 133
더든 강 135
케임브리지대학교 킹스칼리지 채플 안에서 137
변화 139
종달새에게 141
소네트를 깔보지 마오 142
증기선, 고가교, 철도 145
눈을 들지 않고 천천히 땅 위를 걷는 건 정말 기분 좋구나 147
제임스 혹의 부고를 접하고 쓴 즉흥시 148
≪서곡≫(1850) 153
오, 축복 있구나 이 온화한 미풍에 153
내 영혼은 멋진 파종기를 맞았고 157
어느 여름날 저녁 159
위낸더의 소년 162
생플롱 고갯길 166
시간의 점 175
스노던 산 등정 181
부록?≪서정담시집≫(1802) 서문(초록) 193
해설 201
지은이에 대해 215
옮긴이에 대해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