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장애인을 알아
“2번 출구로 가려고 하는데, 길 좀 알려주시겠어요?”
“이 쪽으로 가셔서 저 쪽으로 돌아가세요”
“제가 눈이 안 보여서...”
“그럼 안경 쓰시면 되잖아요?”
‘설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우리 사회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픈 경험이다.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태껏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장애인에게는 신체적?정신적 장애 자체보다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이 더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이다.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마라톤처럼 꾸준히 먼 길을 달려야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마라톤의 명확한 출발점이 없었다. 내가 말로 써내려 간 이 책이 그 긴 달리기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1999년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연합회로부터 장애인 편의시설을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모니터링을 했다. 장애인 편의 시설이 생소하게 느껴질만큼 백지 상태였지만, 오랜시간 직접 현장을 조사하는 동안 일상생활 전반에서 시각장애인이 누리지 못하는 권리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찾아갔다. 2002년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통해 도서관?영화관 등 문화 시설을 자원봉사 학생과 함께 조사했다. 2008년에는 강남구청에서 6개월 간 장애인 편의 시설을 조사했고, 2009년부터는 구로 구청에서 8개월 동안 장애인 편의 시설 점검에 참여했다. 지하철?병원?은행 등 많은 곳의 매뉴얼에는 점자가 잘못 찍혀 있거나, 시각장애인 당사자에 맞지 않게 구성되어 있었다. 현장의 시설물들이나 모든 부분에서 잘 돼있는 부분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현장에서 몸을 부딪히며 느낀 점과 시각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를 오롯이 담았다. 필자는 시가장애인이 평소에 격는 어려움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설명함으로써 차후 더 많은 장애인이 보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원 및 놀이시설, 관공서, 대중교통, 쇼핑몰, 은행 및 금융기관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갈 수 있는 장소에서 시각장애인이 겪는 어려움과 해결 방안 등을 다뤘다. 장애인복지관과 복지제도, 자립센터, 활동지원 제도 등 장애인 관련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시각장애인의 사랑과 결혼, 인터넷과 IT기기가 시각장애인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했다. 현재 특수 교육 체제인 맹학교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을 담은 부분도 있다.
이렇게 책을 완성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2013년의 경험 때문이었다. 발가락에 흑생종이 생겨 대학 병원에 갔다가 피부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의사의 말을 들었던 순간에는 담담했지만, 혼자서 화장실에 오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자고, 겸속하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남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생을 허비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렇듯 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중요한다고 생각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책에는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이 훨씬 많다. 읽는 이에 따라선 반박할 부분도 있을 수 있고, 더 나은 제안도 나올 수 있다. 그런 논쟁의 과정을 통해서 장애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힘든 현실들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개선될 수 있었으면 한다. 부디 이 책이 20만이 넘는 대한민국의 시각장애인들이 더 나은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자 : 조현대
조현대, 1966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 거주
겨우 다섯이 되던 해였다. 경북 예천의 푸르른 들판을 뛰어 다니던 아이가 백내장을 앓기 시작했다. 시골의 병원을 부단히 다녔지만 결국 실명했고, 그 후로는 빛을 본 적은 없었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건 슬프다면 더 없이 슬플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나를 향한 주변의 관심으로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매일밤 잠들기 전 아버지가 읽어주던 동화 덕에 까만 세상에서 색채가 있는 풍경을 상상하는 법을 깨우쳤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를 왔고, 서울 맹아학교를 졸업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다. 방송 해설위원, 장애인 방송 모니터단, 장애인편의시설 모니터링 살피미 활동, 시각장애인 연합회 대의원, 독립연대 등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한 대학에서 사진을 배우고 사진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장애인 자립센터에서 동료들을 따숩게 보듬으며 상담도 했다. 2009년에는 장애인편의시설 모니터링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서울특별시장 표창을 받았다. 이렇듯 나는 장애인이기 전에 독립적인 개체로서 열심히 살아왔다. 이렇게 나는 스스로의 생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게 칠흑같은 어둠이라고 해서, 칠흑같이 살라는 법은 없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읽어주신 동화책처럼 곱게 색이 입혀진 인생을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했고, 이루어 왔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색채있는 삶을 살아온 시각장애인이다.
Ⅰ. 책을 펴내며 2
Ⅱ. 편의시설 4
Ⅲ. 교육 61
Ⅳ. 복지 86
Ⅴ. 사회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