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인공지능은 유창한 문장으로 우리의 질문에 답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그 어느 때보다 관계에서 자주 실패한다. 말 잘하는 사람이 정작 가장 가까운 이와 소통하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완벽한 설명이 상대의 마음에 닿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통이 이토록 어려운 것은, 우리가 소통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다. 서로의 몸과 눈빛과 리듬이 얽혀 의미를 공동으로 구성하는, 살아 있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소통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다. 나머지 93%는 터치, 눈맞춤, 표정, 침묵, 호흡의 리듬-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채운다. 심리학자 비고츠키에 따르면, 우리는 소통하기에 존재하고 소통하기에 생각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고전적인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정면으로 뒤집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즉, 우리는 소통하기에 존재한다.
AI 시대, 인간만이 지닌 비언어적 소통의 힘
감탄과 존중의 심리학을 위하여 제안하는 상호주관성의 원형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말하지 않고 말하기』는 이 혁명적 전환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발달심리학자 비고츠키와 대니얼 스턴, 진화인류학자 토마셀로, 대화 분석을 창시한 사회학자 하비 색스 등의 연구를 종횡으로 엮으며 소통의 가장 근원적인 조건 여섯 가지를 제안한다. 이는 아기가 엄마의 손길을 처음 느끼는 순간부터 시작되어, 언어 습득과 자아 형성, 나아가 민주주의와 문명의 조건으로 확장되는 인간 상호작용의 전체 지도와 같다.
저자는 단지 심리학 이론을 설명하지 않는다. 각 개념을 현실과 충돌시키며 낯설고 예리한 각도로 세상과 인간을 읽어낸다. 오바마의 ‘6초간 침묵’이 왜 21세기 최고의 연설이 될 수 있었는지, 해리 할로의 70년 전 원숭이 실험이 증명한 정서적 유대의 중요성이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왜 모두가 질투와 분노에 휩싸여 있는지-이런 질문들이 비고츠키, 피아제, 칸트 등 수많은 학자들의 견해와 맞닿으며 예상치 못한 깊이와 넓이로 전개된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저자는 제안한다. 우리가 감탄하고 감탄받는 상호주관적 경험-헤겔이 인정투쟁으로, 칸트가 숭고로 말하려 했던 바로 그것은 기계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흉내 내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더 유창한 말이 아니다. 바로 ‘존중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감탄으로 매개되는 인정받는 느낌’이다. 상호 존중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비교하고, 쉽게 분노하며, 사소한 심리적 상처에도 깊이 흔들린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소통은 더 많은 정보도, 더 빠른 연결도 아닌 서로 감탄하는 상호주관적 경험의 회복이다. 사람이 살 만한 디지털 사회의 조건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감탄을 통해 서로를 인정받는 존재로 느끼게 하는 존중의 문법이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는 소통을 기술이 아닌 존재의 조건으로 재정의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관계에서 자꾸 실패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근원적인 문화심리학 수업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자 ‘나름 화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와 여수 끝 섬에 살면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가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눈먼 고기도 잡는다. 베스트셀러 『창조적 시선』, 『에디톨로지』를 비롯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집필했다.
목차
"프롤로그 1_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걸까요?
프롤로그 2_이 책의 학술적 맥락에 관하여
Part 1. 터치_Touch
혼자만 기쁘면, 더 슬퍼집니다 / 권력과 터치: 어깨 두드리기 / 만지면 덜 아픕니다 / 사랑의 본질
Part 2. 눈맞춤_Eye Contact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미숙한 개체’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 ‘강한 것’이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습니다 / 개처럼 인간도 스스로 가축화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 눈맞춤에서 시선으로: 부끄러움의 탄생 / 시선이 작동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의 탄생 /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사이의 권력
Part 3. 정서 조율_Affect Attunement
그들은 눈을 마주치면 웃습니다! / 미소라기에는 애매한 모나리자의 미소 / 감정불편사회: 이모티콘을 쓰는 이유 / 의사소통의 비밀을 풀어낸 20세기 최대의 발견 / 놀라운 신생아의 모방 능력 / 가장 형편없는 인간 건축가가 최고의 꿀벌보다 위대한 이유 / 느닷없이 내 2만 권의 책이 필요없어졌습니다! / 희한하게도 서양의 현인 중에는 ‘맹인’이 많습니다 / 언어는 ‘사회화’되는 걸까요, ‘내면화’되는 걸까요? / ‘미술’보다 ‘음악’이 더 위대합니다! / AI는 절대 먼저 말을 걸지 않습니다 / 색을 듣고, 소리를 본다! / ‘객관성의 신화’에서 ‘상호주관성의 세계’로
Part 4. 순서 바꾸기_Turn Taking
‘6초의 침묵’이 21세기 최고의 연설을 가능케 했습니다 / “누가 그랬어?” / 생방송에 침묵이 흐르면 방송 사고입니다! / 단언컨대, AI는 죽었다 깨어나도(?) 인간처럼 말하지 못합니다! / 침팬지는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없습니다!
Part 5. 함께 보기_Joint Attention
시선이 곧 마음입니다 /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진화생물학적 기원 / 인간 문명의 기원: ‘9개월 혁명’ / 인간만 하늘을 ‘함께’ 올려다봅니다 / 5명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리의 모든 사람이 따라서 봅니다 / 자꾸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 매우 폭력적인 ‘포식적 관객’의 출현
Part 6. 관점 바꾸기_Perspective Taking
MBTI는 혈액형이나 별자리와 큰 차이 없습니다 / 원래 ‘교양’은 없었습니다 / 하버마스의 ‘공론장’과 심리학의 ‘관점 바꾸기’ / ‘마음 이론’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걸까요? / 날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새의 시선으로 볼 수 있을까요? / 나이가 들어서도 ‘관점 바꾸기’가 가능하려면 / 인간은 체계적으로 비합리적입니다! / 우리가 가짜 뉴스와 음모론에 쉽게 속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 ‘관점’의 기원 / 세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지루함’, ‘불안함’ 그리고 ‘재미’
보론(補論)_왜 소통하는가
아주 사적인 에필로그_지난 30년 동안 이 책을 너무나 쓰고 싶었습니다"